정신건강 사회복지사로서 번아웃 증상과 소진으로 정신건강복지센터를 다니다가 퇴사를 결심한 과정과 그로 인해 배운점에 대해 이야기 드려볼까 합니다. 혹시 직장인분들 중 우울감과 스트레스, 짜증, 무력감이 늘었다면 제 글을 참고해주시고 자신을 케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1년 반 정도 한 지역의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일을 하다가 번아웃을 경험하고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Edelwich와 Brodsky(1993)가 설명한 소진의 진행 과정은 열성 → 침체 → 좌절 → 무관심 순으로 진행됩니다. 제 경험을 번아웃의 과정에 따라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 아래 경험은 개인적인 경험과 주관적인 생각임을 알려드립니다.
열성
수련과정 이후 첫 직장인만큼, 열정이 남달랐습니다. 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지역 주민들의 정신건강에 조금이라도 더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했습니다. 불행히도 첫 입사 시, 주변 동료들의 반응도 좋지 않았습니다. 당시 코로나 시국에 각자 맡은 사업을 처음부터 기획해야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와중에 초짜가 입사한 것이기 때문에 신경 쓸 겨를도 없고 오히려 오리엔테이션 업무만 늘었기 때문에 제가 짐이 된 셈이었습니다.
제가 간 팀은 응급업무, 사례관리 업무, 사업업무를 동시에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신입이 버티기 힘든 팀이었습니다. 저를 뽑아주신 상사께서는 제가 면접을 잘 봤기 때문에 잘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해당 팀에 배정했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의 잠재력을 알아봐주시고 좋게 봐주셨다는 생각에 참 감사합니다. 하지만 해당 팀은 경력직들도 기피하는 팀이었기에, 당시로서는 들어올 사람이 없어서 저를 뽑은것이라는, 부정적인 그리고 다분히 개인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맡은 일은 최선을 다해 수행했습니다. 비록 신입이고 일머리도 부족하지만, 열심히 동료들을 돕고 맡은일에 최선을 다하면 저를 긍정적으로 봐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일주일에 2-3번 야근은 기본이었고 저녁 9시 넘게 야근을 한달동안 한 적도 있었습니다. 늦게 퇴근하는 것이 싫어서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서 밀린 업무를 처리할 때도 있었구요. 그렇게 최선을 다해 업무를 해서 성과를 낼 때에는 잠시 기쁘기도했지만 만족스럽지는 않았습니다. 열심히 할수록 고립되는 느낌이 들었고 센터는 이득을 얻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에게 돌아오는 것은 칭찬 한 마디 뿐이었습니다. 칭찬 한 마디도 사실 감사해야하는 부분이었지만, 당시 저는 제가 한 노력과 열정에 비해 돌아오는 것들에 대해서 만족스럽지 않다고 느꼈고 회의적인 감정이 들었습니다.
침체
제가 시간과 노력을 쏟은만큼 얻는것이 없다고 느껴질 때, 침체기를 겪기 시작했습니다. 참 아이러니합니다. 저는 사회복지를 선택할 때 높은 보수, 업무시간, 환경 등 외적인 것을 얻기 위해 선택하지 않았고, 그저 사람을 변화시키고 보람을 얻을 수 있다면 만족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불만족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되면서 '사회복지도 그저 일이구나'라고 생각하고 업무 환경적인 부분에 불만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상사로부터 꾸중을 듣거나 업무 실수를 할 때마다 저는 계속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야지, 항상 최선을 다해야지'라고 생각하며 더 잘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저 자신을 채찍질하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1년이 지나도 상사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면서 자신에 대한 회의감과 실망감만 더욱 커졌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동료들과 밥한끼 하면서 이러한 감정을 풀 수 있는 기회도 적었고, 점심시간에도 책상에서 혼자 밥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른 동료들은 이미 서로 친해져있기때문에 새로 적응하기가 어려웠고 해당 팀은 이미 각자가 맡은 업무로 서로 예민해져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저에게 있어 사무실 분위기는 냉랭하게 느껴졌습니다. 응급 전화가 오면 점심을 못먹을때가 많았고 저녁도 야근을 하게 되면 따로 배달음식을 시켜먹지 않는이상 제대로 식사를 챙기지 못했습니다. 이런 시기에 잠도 잘 못자고 식사도 챙기지 못하면서 응급실에 가는 일도 생겨 당시 체중이 39kg까지 빠지기도 했습니다.
좌절
스스로 자존감도 낮아지고 스트레스를 조절하지 못하다보니, 대상자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정신과적 질환을 갖고 계시는 대상자분들을 전화로 상대하거나 다양한 갈등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으며 어느새 제가 전화로 대상자와 언성을 높이고 있는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팀장님께서 상황을 중재해주셨고 결국 다른 상담원이 대상자를 담당하게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방문을 나갈땐 2명이서 짝을 지어 나가는데 저 대신 옆에있는 상담원이 상담을 더 편하게 하고 공감을 잘 해준다며 바꾸는 일도 있었습니다. 대상자가 상담원을 저항하는 일은 지금 생각하면 꽤 자주있는 일인데도 당시에는 큰 좌절로 느껴졌습니다.
결정적으로 제가 담당한 대상자 한 분이 세상을 떠나시며 저는 사회복지사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큰 좌절을 겪었습니다. 큰 무력감과 사회복지사로서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운이 좋게도 당시 종사자를 위한 정신과상담 제도가 있었고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내 잘못이 아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애도의 슬픔도 지속되었지만 자꾸만 후회와 자책감이 반복되었습니다.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람을 잃었는데 한번에 괜찮아질 수 없습니다. 아마 이 기억은 제가 평생 가져가겠지요.
무관심
사무실에 전화가 울립니다. 어쩌면 급한 전화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심장이 쿵쾅쿵쾅대고 받고싶지 않은 마음이 듭니다. 전화를 받는 일이 매우 두렵고 최대한 미루고 싶고 무엇을 위해 사무실에 앉아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상담을 구체적으로 진행하고 기록하는 편이었지만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필요한 용건만 상담하고 정말 필요한 내용만 아주 간결하게 기입하고 끝냅니다. 이제 저의 자리는 제가 아닌 누군가가 와도 저보다는 잘 할것이라는 생각으로 가득찼습니다. 쉬고싶다는 생각이 가득하고 더이상 새로운 업무를 받게 된다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업무연장 제의를 3번씩이나 받았지만, 결국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번아웃(소진)을 통해 배운 점 *
번아웃이라는 단어는 정신건강업무를 하는 이들, 즉 감정노동자들에게 오는 무력감, 권태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라고 합니다. 저는 여러가지 우울증 양상 중 한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울증이라는 단어보다 차라리 번아웃이라는 용어가 더 가볍게 느껴지고 거부감이 적기 때문에 자주 쓰인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번아웃을 경험한 것은 여러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코로나와 경직적인 사무실 분위기, 상사와의 갈등, 업무적인 고충 등 상황적인 요인도 물론 영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나 완벽주의 아닌 완벽주의, 자책하는 습관 등 저의 내적인 요인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번아웃을 통해 배운점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사회복지도 결국 업무의 하나이다. 물론,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하지만 그 최선이라는 것의 선을 명확히 설정하고 지키자.
▶ 상사로부터 꾸중을 듣거나 잘못을 지적받으면 업무적으로 수정해야 할 사항만 기억하자. 그 외에 감정적인 단어들과 모션은 무시하자.
▶ 내 앞에서 직접 들은 말만 받아들이자. 다른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나 행동, 표정, 말투 등을 과도하게 신경쓰지 말자. 신경쓰인다면 질문하는 등 직접적으로 표현하자.
▶ 집중해야할 일에만 집중하자. 내가 맡은 모든 일이 완벽할 수 없다. 중요한 일의 우선순위를 설정해서 잘 해야되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자. 상대적으로 집중하지 못한 일에 대해 들은 평가는 지나치게 마음에 담아두지 말자.
▶ 회사에서의 기분을 집까지 가지고 들어오지 말자. 회사에서 있었던 일은 회사 안에서만 생각한다. 집은 나와 소중한 가족들을 위한 공간이다. 회사로 인해 좋지 않은 기분은 밖에 버리고 오자. -> 요가, 헬스가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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